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낙(李基洛)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36664
  • 전몰일자 : 19510131

공훈사항

이기낙 일병은 경상남도 울산군 농소면에서 출생했다(출생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한 1950년 9월 20일,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KATUSA)로 차출되어 미 제3사단 제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기낙 일병은 10월 중순에 일본으로 건너가 미 제3사단 장병들과 함께 한반도를 투입될 준비를 실시했다. 이어 11월 5일에 일본을 출항하여 17일에 원산에 상륙함으로써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미 제3사단은 원산의 항만과 비행장을 방호하다가 20일에 함흥으로 이동하여 흥남 교두보 방어선을 점령하였다.
윤영우 일병이 소속된 미 제3사단은 미 제1해병사단의 장진호 철수를 엄호하고, 이후 수도사단과 미 제7사단의 지원을 받아 흥남만 외곽 교두보방어선을 점령하였다. 사단은 12월 15일에 피해가 큰 미 제1해병사단의 흥남 철수를 지원했고, 12월 17일 수도사단, 20일에 미 제7사단의 철수를 지원했다. 이후 사단은 교두보 방어선을 제3주저항선으로 축소하여 중공군의 맹렬한 공격을 격퇴하고 있었다. 미 제3사단은 타 사단들의 흥남항 철수를 지원하고 최후에 홀로 남게 되었다. 사단은 24일 오전 11시에 마지막으로 철수를 개시했다. 당시 미 해군의 함포지원사격과 미 공군의 전략폭격 지원 하에 7개 승선 지점을 선정하여 연대 및 대대별로 동시에 승선을 개시하여 큰 피해 없이 철수할 수 있었다.
이후 미 제3사단은 부산항에 도착한 후 부대정비를 실시하다가 중공군 총공세 후 유엔군이 위협에 처하자 1951년 1월 7일에 평택으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점령했고, 1월 25일 반격작전 시에 남한산성 방향으로 공격하며 한강 남안으로 진출했다. 그는 1월 31일에 미군 장병들과 함께 한강 남안을 향해 공격하던 중 적의 총탄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낙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90-ㅋ-05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