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근(李基根)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610263
  • 전몰일자 : 19510921

공훈사항

이기근 일병은 1927년 3월 3일에 전랍구도 근산군 김생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4월 공세’로 위기에 처했던 1951년 4월 하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제3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기근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을 때에 제2사단은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효과적으로 저지하고 38도선을 향해 반격작전을 실시 중에 있었다. 사단은 군단계획에 의거 5월 20일부터 반격작전을 실시했는데, 최초에는 미 제24사단의 가평 진출을 엄호하고, 2단계 작전으로 5월 24일부터 38도선을 향해 본격적인 공격을 했다. 당시 이경열 일병이 소속된 제32연대는 청평-가평을 연결하는 도로의 감제고지에 배치된 적들을 효과적으로 공격하여 제압하고 6월 12일에는 적근산(1073고지)-육단리를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이후 쌍방 간에 휴전협상이 논의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되었다. 유엔군사령부에서는 7월과 8월에 휴전협상이 지지부진하자 협상을 촉진시키기 위해 부대별로 공격작전을 감행하여 적에게 최대한 군사적 압박을 가하라고 지시했다.
제2사단은 상급부대 명에 의거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한 일환으로 방어진지 전방의 감제고지인 745고지를 탈취하기로 했다. 이에 사단은 8월 2일 공격을 개시하여 8일까지 뺏고 빼앗기는 고지쟁탈전이 계속되었으나 결국 확보하지 못했다. 이후 9월 1일에 다시 공격하여 3일까지 치열한 공방전 끝에 탈취했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런데 이기근 일병이 소속된 제32연대는 9월 21일에 진현리-방동부근의 633고지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받고, 이를 격퇴하기 위한 전투를 수행했다. 그는 선두에서 장병들과 함께 용감하게 싸웠으나, 전투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근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39면-21504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9-ㄹ-06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