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건(李基建)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944680
  • 전몰일자 : 19520119

공훈사항

이기건 일병은 충청북도 보은군 내북면에서 출생했다(출생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로 위기에 처했던 1951년 1월경에 제주도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3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기건 일병이 부대에 전입했을 때인 2월 중순에 제2사단은 안동 일대에서 후방지역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후방지역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4월 28일에 청평 일대의 전방작전지역으로 이동하여 미 제9군단에 배속되었다. 이후 그는 사단장병들과 함께 5월 16일 시작된 ‘중공군 5월 공세’를 저지하고, 20일부터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전선을 전술적으로 방어하기 용이한 캔사스선(육단리-적근산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유엔군사령관은 휴전협상이 공산군의 전술로 지연되자, 방어지역 전방에 대한 공격작전을 감행하여 휴전협상을 촉진시키기로 했다. 제2사단은 주저항선 전방지역에 위치한 감제고지인 745고지에 대한 공격을 실시하기로 했다. 이기건 일병은 사단장병들과 함께 1차로 8월 2일부터 8일까지, 2차로 9월 1일부터 3일까지 공격작전을 실시하여 마침내 목표인 745고지를 탈취했다.
미 제9군단은 공산군을 계속 압박하기로 하고 10월 중순 13일부터 21일까지 사단의 김화-금성진격작전을 실시하기로 했다. 이에 이기건 일병은 사단 장병들과 함께 공격작전에 참가했으며, 그가 소속된 제32연대는 사단의 조공으로서 1단계로 492고지를 탈취하고 2단계로 북정령-하진현 방향으로 공격했다. 결국 사단은 21일에 최종목표를 탈취하여 금성 서남측 직목동 지역까지 진출하여 방어로 전환했다. 이후 전선은 다시 소강상태가 되었고, 이는 1952년까지 계속되었다.
제2사단은 진지보강공사에 집중하면서 방어지역에 대한 수색정찰 활동을 강화했다. 이기건 일병이 소속된 소대는 1월 19일에 방어종심지역에 대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조를 발견하여 교전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전투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건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39면–21503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0-ㄱ-01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