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기간(李基幹)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60497
  • 전몰일자 : 19521023

공훈사항

이기간 하사는 1930년 2월 10일에 경상북도 상주군 상주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1년 11월 9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1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기간 하사가 부대에 배치되었을 때인 12월 중순, 제2사단은 적근산 북쪽에서 금성 서남쪽 직목동까지 진출하여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그가 전입하기 전 사단은 적근산-육단리를 잇는 선에서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있었으나,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공세행동으로 적을 압박하라는 유엔군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10월 13일부터 18일까지 김화-금성진공작전을 실시하여 주방어선 전방의 주요 감제고지들을 확보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장기간 계속되었고, 사단은 몇 번의 부대 교대를 거쳐 1952년 6월 30일에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김화 동쪽의 남대천 일대의 방어진지를 미 제40사단으로부터 인수했다. 그리고 군단 명령에 의거 오성산 남쪽의 중공군 전초지역인 저격능선을 공격하기로 계획했다. 이 저격능선은 방어진지 전방의 주요 감제고지로서 오성산을 공격할 때 발판을 제공할 수 있는 요충지였다.
이기간 하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10월 14일에 사단의 선두부대로 공격을 개시하여 저격능선을 탈취했다. 이에 오성산 일대에 배치되어 있던 중공군 제15군이 그날 밤부터 역습을 감행하였고, 이때부터 저격능선을 두고 피아간에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이 끈질기게 이어졌다. 이 하사는 10월 23일에 장병들과 함께 저격능선을 방어하고 있었는데, 적의 공격을 격퇴하기 위해 진두지휘하며 병사들을 독려하며 싸웠으나 역부족으로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분대원들을 인솔하여 철수하던 중 적의 총탄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기간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5판-8면-01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0-ㅌ-06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