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긍수(李肯秀)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236918
  • 전몰일자 : 19510601

공훈사항

이긍수 이등중사는 서울특별시 중구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하고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 이남으로 철수하면서 또 다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1월 중순경 입대하여 부산에 위치한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육군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긍수 이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당시 국군은 초기전투에서 많은 손실을 입고 부대의 재편과 보충을 통해 전쟁 전의 수준을 회복하였으나 대부분 신병이어서 전투력이 미약한 상태였다. 그리고 중공군의 공세로 워낙 급박한 상황에서, 입대하였던 병력들은 기초군사훈련 과정조차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전선에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긍수 이등중사 역시 간단한 소총조작법만을 익힌 후 전선에 배치되었다.
1951년 4월에 접어들면서 이긍수 이등중사와 부대원들은 중공군의 춘계공세를 저지하기 위하여 모든 전력을 경주했다. 이 무렵 중공군이 공세를 취할 것이라는 정보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중부전선과 중동부전선에서는 4월 공세 개시 직전의 상황과 유사하게 북한군이 광범위한 지역에서 연막차장을 실시하였고 항공관측에서도 대병력의 남하가 자주 목격되었다.
이 무렵 양측은 주요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전초진지 쟁탈전을 전개하였다. 이긍수 이등중사와 부대원들은 5월 하순까지 반격작전을 계속하여 중공군을 섬멸하며, 적에게 막대한 인적, 물적 손실을 가하고 고지를 확보함으로써 1개월간에 걸쳐 최대 역량을 투입한 중공군의 춘계공세를 저지시켰다.
이긍수 이등중사는 전투를 수행하는 고지에서는 서로 뺏고 빼앗기는 전투가 반복되면서,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투에 임했다. 위기에 처한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방어하던 이긍수 이등중사는 1951년 6월 1일 강원도 인제 부근 서화리 전투에서 중공군의 기습사격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긍수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7면-3500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6-ㅈ-01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