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금현(이금현)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157817
  • 전몰일자 : 19510313

공훈사항

이금현 일병은 1933년 4월 10일 서울시 영등포구 양평동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선으로 철수를 거듭하고 있을 때인 1950년 7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육군직할 제1훈련소에 배치되었다.
이금현 일병이 전선에 투입될 당시에는 정부와 국군 및 유엔군 지휘부가 대구에 집결되어 있었다. 국군이 낙동강방어선을 사수하고, 반격하기 위해서는 병력 보충이 시급한 문제였다. 이에 따라 국방부에서는 신병 교육을 목적으로 대구에 제1훈련소를 창설하게 되었다.
제1훈련소는 교육대와 보충대로 편성되어 군의 기초적인 교육훈련 및 병기조작과 전술훈련을 실시하는 등 신병 양성을 위한 교육훈련에 주력하는 한편 대구지역 향토방위작전도 병행하였다. 이때 대구 위기를 실감한 육군본부는 후방근무지원부대인 본부중대, 근무중대, 군악대 및 보충대까지 동원하여 대구 근교에 배치하고, 훈련소의 국군 신병 1개 대대를 미 제1기병사단 예하 제8기병연대 후방의 도덕산 일대에 배치하여 다부동-대구 축선을 방어하였으며, 이후 국군은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낙동강 선에서 방어 작전을 전개하였다.
이금현 일병과 장병들은 강력한 방어 작전을 실시하여 북한군의 공세를 꺾었으며, 9월 중순부터는 공세로 전환하여 반격작전에 돌입, 10월 1일 38도선을 돌파하고 북진을 계속해 한・만 국경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이 일병과 장병들은 중공군의 강력한 공세에 밀려 38도선 이남으로 철수하였고, 곧이어 제2차 반격작전을 전개하여 다시 38선 부근까지 진격하였다.
1951년 초,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하기 위하여 모든 전력을 경주하였다. 이 일병과 장병들은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중공군의 2월 공세를 분쇄하고 격멸작전을 벌여 3월 초에는 한강 남안-횡성-강릉을 잇는 선까지 진출하여 일직선으로 연결된 방어선을 확보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금현 일병은 부여된 전투근무 지원임무를 수행하다 1951년 3월 13일 삼척 부근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금현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125-ㄴ-09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