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금철(李金鐵)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5102142
  • 전몰일자 : 19500903

공훈사항

이금철 하사는 충청남도 대전시 선화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전인 1949년 4월 6일 원주에 주둔하고 있던 제8연대에 입대하였다. 그는 기초군사훈련 과정을 마친 후 춘천으로 이동해 38도선 경계임무를 수행하였으며 6·25전쟁 직전인 6월 20일에는 수도경비사령부에 배속되어 서빙고로 이동하였다. 그 후 이 하사는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금철 하사는 즉각 38도선 방어전투에 투입되었다. 북한군은 동두천 축선에 제4사단과 40여 대의 T-34전차를 투입해 공세를 감행하고 있었다. 이 하사가 소속된 사단은 의정부를 거쳐 창동 방어선으로 철수하면서 전투를 계속하였다. 그러나 북한군의 전차 공격에 밀려 국군의 방어선은 너무나 쉽게 붕괴되었다.
이금철 하사와 장병들은 주저항선인 동두천 북쪽 소요산 일대의 진지로 철수하여 남하하는 북한군과 일진일퇴의 치열한 전투를 계속하면서 진지를 사수했다. 북한군은 6월 27일 저녁 미아리 방어선을 돌파하고, 6월 28일 새벽 서울에 진입하였다. 이금철 하사와 장병들은 소부대 단위로 분산된 채 삼송리를 거쳐 행주로 철수해 한강을 도하하였다.
이금철 하사와 장병들은 오류동 일대에서 북한군을 저지한 후 7월 3일 한강방어선이 무너지자 지연전 및 재편성을 병행하며 낙동강방어선까지 철수하였다. 북한군 제12사단은 8월 9-12일 사이에 청송-죽장-기계축선으로 공격하여 기계와 포항을 점령하였다. 그와 장병들은 16일 안강 북쪽 양동리 지역에서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여 기계를 탈환하는 데 성공하였다. 북한군의 9월 공세가 시작되자, 이 하사와 장병들은 경주 북방 일대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 북한군을 물리쳤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금철 하사는 1950년 9월 3일 경주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금철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3672 국)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03-ㅋ-02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