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금준(李金俊)

  • 군별 : 해병
  • 계급 : 일병
  • 군번 : 9214314
  • 전몰일자 : 19511217

공훈사항

이금준 일병은 경남 남해군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51년 10월 10일 진해 해병대 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과정을 마친 후 1951년 12월 17일 해병대사령부에 배치되었다(전사 장소로 보아 최초 독립 제41중대에 증원된 것으로 추정).
당시 전황은 공산군과 유엔군이 휴전협상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좀 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상태에서 휴전을 맞이하기 위해 지리한 공방전을 거듭하던 상황이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되기 전 제41중대는 1951년 4월에 서해 교동도, 백령도, 석도를 점령했고, 1951년 5월 7일부터는 석도를 거점으로 하여 적의 도서와 해안지역에 대한 공격활동을 전개했다. 이때부터 북한군은 서해안에 대한 경비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적은 석도와 인접한 장연-은율-송화-용강 일대의 해안 지역에 사단규모의 병력을 배비하고 지뢰를 매설하는 등 아군의 대규모 상륙돌격이나 상륙기습을 저지하려고 했다. 이러한 가운데 한편으로는 서해안에서 해병대에 의해 점령당한 도서를 탈환하기 위해 정찰대를 파견하여 아군의 동향을 파악하는 등 공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1951년 12월은 전선이 고착상태에 머물렀고, 적은 그들의 예비병력을 해안을 방어하는데 증원하고 경비를 강화하였다. 호도에는 제41중대가 진지를 점령하고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대대의 소수병력을 호도(석도 남쪽 2km)에 잠입시켜 대안(對岸)인 월사리 반도에 대한 감시를 강화했다. 당시 호도의 대안(對岸)에는 적 2개 연대규모의 병력이 투입되어 있었으며 점차 공세적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1951년 12월 17일 독립 제41중대는 적정을 파악하기 위해 야음을 틈타 정찰대를 편성하여 대안 상의 적진에 투입했다. 이 일병은 정찰대에 편성되어 정찰임무를 수행하던 중 적의 매복대와 교전이 벌어져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금준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9판-4면-08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2-ㅁ-03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