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금준(李金俊)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0684433
  • 전몰일자 : 19530418

공훈사항

이금준 상병은 1928년 11월 12일에 전라남도 나주군 공산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이 휴전 협상을 진행하고 있던 1952년 1월 15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금준 상병이 부대로 배치되었을 때인 2월 하순, 제6사단은 양구 일대에서 교육훈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3월 22일에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김화 부근의 거리실, 원남 일대로 이동하여 미 제40사단으로부터 방어진지 일부를 인수하여 봉화산(477고지)-교암산(770고지)을 잇는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그러던 중 이금준 상병이 소속된 제2연대는 1952년 6월 포로교환 문제로 교착된 휴전 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공세작전을 실시하라는 상급 부대 명령에 의거 6월 12일에 방어진지 전방의 감제고지(금성천 북동쪽 A, B고지)를 공격하여 6월 15일 탈취했다. 이곳에서 적의 계속된 역습으로 전투는 그치지 않았다. 이 무명고지는 피아를 감제 관측하는데 주요한 지형이라 서로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6사단은 8월로 접어들자 전선이 소강상태가 되었으나, 9월 29일에 중공군이 금성천 북동쪽의 감제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다시 두 차례에 걸쳐 공격해 옴으로써 제2연대 장병들은 치열한 전투 끝에 격퇴했다. 이후 제2연대는 10월 21일부로 왼쪽으로 확장된 책임지역인 552고지에 대한 방어를 담당했다. 이후 전선은 쌍방간에 큰 전투행위가 없이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이금준 상병이 소속된 제2연대는 1953년 1월 1일부로 사단의 예비로 전환했다가 2월 5일부로 다시 우일선(동쪽)의 전방 방어지역인 교암산 지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연대는 주로 방어진지 보강, 수색 및 매복 작전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던 중 2월 20일에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부대를 발견하여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대구에 위치한 제27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곳 병원에서 의료진들에 의해 정성스런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4월 18일에 안타깝게도 사망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금준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88-ㅁ-05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