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금조(李今祚)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19675
  • 전몰일자 : 19530719

공훈사항

이금조 이등중사는 경상남도 고성군 개천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1951년 6월 경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통신중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후의 전황은, 휴전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유엔군이 38도선 일대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전개하고 있었고, 제3사단은 강원 양양 일대에서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사단은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으로 배속이 전환되었고, 양구 동북방 가칠봉으로 이동하여, 1,211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북한군 제13·2사단과 공방전을 펼쳤다.
사단은 1952년 1월 12일 미 제9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양구 백석산 서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949고지~석장리 간의 제6사단 진지를 인수했고, 4월 5일 재창설된 제2군단이 미 제9군단의 전선을 인수함에 따라 사단은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9월 28일 중공군 제203사단이 사단의 전초진지인 피의고지 및 독수리고지에 공격을 가해왔고, 사단은 백병전을 펼치는 치열한 교전 끝에 이 고지들을 지켜냈다.
1953년 4월 2일 중공군은 하계공세의 서전으로, 사단 전초가 설치된 689고지에 대해 대대적인 공격을 개시했다. 사단 장병들은 중공군 제181사단의 공격을 맞아 8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혈전 끝에 이 고지를 지켜냈다. 사단은 6월 15일 제2군단에 다시 배속되어 백암산 전방 북한강과 금성천 분기점 상의 529고지(관망산) 전투에 투입되었다. 중공군 제180·201사단은 6월 25일 공격을 개시했고(6월 공세), 사단은 7월 3일까지 7차에 걸쳐 역습을 감행하며 공방전을 치렀으나, 끝내 이 고지를 적에게 내주고 말았다.
7월 13일 중공군은 금성 돌출부에 대해 마지막 총공세(7·13 공세)를 가했다. 금성천 북방의 여문리 일대에 배치된 사단은 중공군 제60군 예하 3개 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고 분전했으나, 압도적인 전력에 밀려 흑운토령-주파령-산양리까지 지연전을 펼치면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전투에서 이 이등중사는 지휘통신을 유지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7월 19일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금조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6판-2면-15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0-ㅌ-00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