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금용(李今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7727
  • 전몰일자 : 19510405

공훈사항

이금용 일병은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1950년 4월 5일 제3사단에 입대하여 병기중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은 1950년 3월 27일까지 향로봉, 양산, 울산 일대의 공비소탕작전에서 병기 정비에 앞장섬으로써 북한군의 후방교란 기도를 분쇄하는 데 기여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사단은 6월 29일 울진지역에 투입되었고, 7월 1일부터 8월 16일까지 울진, 영해, 영덕 일대에서 지연전을 펼치면서 적의 남진을 저지하다, 17일 장사동에서 해상철수를 하여 구룡포에 상륙했다. 사단은 8월 20일 다시 전투에 투입되어 포항과 형산강 변 일대에서 9월 14일까지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총반격 태세에 들어갔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총반격으로 전환했고, 제3사단은 9월 17일 형산강을 도하하여 반격을 개시했다. 사단은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이후 안 중사와 사단 장병들은 사기충천하여 진격했고 10월 10일 원산을, 11월 25일 백암을 점령하고, 계속 북진을 하는 중에 중공군의 참전으로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하여 구룡포, 묵호, 부산에 상륙했다. 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사단은 적의 공격에 맞서 횡성, 제천, 원주, 하진부리, 현리 일대를 오르내리며 치열한 공방전을 치른 끝에 1951년 3월 하순 38도선 상의 현리-하서림을 잇는 선을 확보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4월 초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고, 사단은 4월 중순 인제군 한계리, 가리봉 일대까지 진출했다. 부대가 자주 이동하는 상황에서 적시적인 병기지원을 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이 일병은 병기병으로서 전선 이 곳 저 곳을 뛰어다니며 병기 보충, 정비에 최선을 다해 왔다. 그는 이 진격전에서 제22연대의 병기 정비를 위해 출동했다가 적의 습격을 받고 4월 5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금용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0판-3면-09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6-ㅅ-08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