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금용(李今龍)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0182292
  • 전몰일자 : 19510628

공훈사항

이금용 상병은 1925년 11월 29일에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으나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하여 방어준비를 하던 시기인 1950년 12월 30일,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하고 제2사단 3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금용 상병이 부대로 배치되었을 때, 제2사단은 양문리-탑두울을 잇는 선에서 방어하다가 중공군의 3차 공세(일명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로 철수하여 제천으로 이동하여 단양-풍기 간의 병참선 경계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안동으로 이동하여 일월산과 보현산 일대에서 공비소탕작전을 수행하다가 4월 28일에 청평 일대의 전방작전지역으로 이동하여 미 제9군단에 배속되었다.
중공군은 5월 16일부터 주공을 동부전선에 지향하여 총공세를 펼쳤다. 그들의 작전목적은 동부에 집중 배치된 국군을 격멸하여 서부전선의 미군을 고립시킴으로써 향후 유엔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는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데 두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서울 북방-마석-용문산-홍천-하진부리-대관령-강릉을 잇는 선에서 저지했다.
제2사단은 ‘중공군의 5월 공세’를 격퇴하고, 이후 즉각 군단계획에 의거 5월 20일부터 반격작전을 실시했다. 최초에는 미 제24사단의 가평 진출을 엄호한 후 5월 24일부터 2단계 작전부터 38도선을 향해 본격적인 공격을 했다. 이 과정에서 이금용 상병이 소속된 제32연대는 청평-가평을 연결하는 도로의 감제고지에 배치된 적들을 효과적으로 공격하여 제압하고 6월 12일에는 적근산-육단리를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이후 유엔군과 공산군은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대규모의 공세적인 활동은 서로가 실시하지 않았다. 이에 사단은 방어진지 보강과 작전지역에 대한 수색정찰에 집중했다. 그가 소속된 소대는 6월 28일 사단 후방지역으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조를 발견하고 소탕작전을 실시하여 격멸했다.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워 적을 격멸하는데 크게 기여했으나, 전투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금용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91417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45묘역-5판-1206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9-ㄴ-03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