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금영(이금영)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3700092
  • 전몰일자 : 19510627

공훈사항

이금영 일병은 1926년 10월 10일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7월 20일 육군에 입대하여 국군을 건설한다는 자부심으로 훈련과 작전에 임하였으며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육군직할 제1102야전공병단에 배치되었다.
육군본부는 1950년 8월에 제1공병단을 제1201건설공병단으로 개칭하는 한편, 제1101야전공병단과 제1102야전공병단을 창설하여 제1·2군단을 각각 지원하게 했다. 제1군단은 1950년 7월 5일 경기도 평택에서 창설되었고, 낙동강방어선 전투에서는 중동부전선을 맡아 북한군과 공방전을 펼친 끝에 적을 격퇴하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군단은 북진작전 때 수도사단과 제3사단을 배속받아 작전을 했다. 군단은 9월 16일 반격작전으로, 9월 23일 추격작전으로, 10월 1일 북진작전으로 각각 전환했다.
제1군단은 수도사단과 제3사단을 통제하여 동해안을 따라 진격하여 10월 10일 원산을 점령하고, 11월 말에는 청진, 부령까지 진출했다. 군단은 제3사단을 따라 양양-원산-함흥으로 기동했다. 북진작전 간 공병단은 주보급로와 교량 건설·보수를 함으로써 전방 사단들과 군단에 대한 보급지원이 가능하게 했다.
청진, 혜산진까지 진격한 제1군단은 중공군의 공세에 밀려 12월 1일부터 철수하기 시작했다. 제3사단은 12월 10일 성진에서 해상으로 철수하여 묵호, 구룡포, 부산으로 상륙했고, 수도사단은 10월 17일 흥남에서 해상 철수하여 묵호와 부산으로 상륙했으며, 군단과 야공단도 18일 흥남에서 철수하여 묵호에 상륙했다.
이 무렵 이 일병은 1950년 10월 25일 서울에서 육군본부 직할로 창설된 제1801기술공병단 예하 제109야전공병대대로 전속되었다. 제1801기술공병단은 국군을 일반지원했고, 제109야전공병대대는 군단 후방지역 이남 지역에 대한 도로 및 교량 보수와 공병부대에 대한 기술지원 임무를 수행했다. 이 일병은 앞장서서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군 작전에 크게 기여했으나, 1951년 6월 27일 신림 부근 주보급로 보수작업 중에 적 정찰대의 습격을 받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금영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126-ㄹ-05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