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금식(李今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78967
  • 전몰일자 : 19510103

공훈사항

이금식 일병은 1929년 5월 14일 경기도 수원시 화서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중공군의 참전으로 조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구하고자 분연히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12월경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에 밀려 38도선으로 철수하던 상황이었다. 제7사단은 미 제8군 철수계획에 따라 12월 3일 승호리 일대로, 6일 신계를 거쳐 시변리로 철수했고, 계속해서 연천을 거쳐 12월 15일 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했다.
38도선으로 철수한 미 제8군은 김포반도-임진강-화천-양양을 연하는 선을 주저항선으로 선정한 후 포천-김화 도로를 중심으로 중서부전선은 미군에, 동부전선은 국군에 방어임무를 부여했다. 한편 육군본부는 12월 15일을 기해 국군 제3사단의 방어 종심을 보강하고, 유사시 증원부대로 운용하기 위해 홍천에서 정비 중인 국군 제7사단을 춘천으로 이동시켜 육군 예비로 확보했다. 이후 연대는 춘천 부근의 38도선 일대에 진지를 편성하고 방어준비에 매진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시작했고, 연대는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연대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주진지가 돌파됨에 따라 상급부대 계획에 따라 자은리를 거쳐 횡성 북방으로 철수했다. 그러나 북한군 제5군단이 원주 지역에 깊숙한 돌파구를 형성하고, 제2군단이 경북 안동까지 종심 깊게 침투함에 따라 연대는 또다시 철수하여 1951년 1월 8일 영월 북서방의 서벽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장서서 용감히 싸우다 적탄에 맞아 1월 3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금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51-ㅊ-03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