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금수(李今水)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76651
  • 전몰일자 : 19530616

공훈사항

이금수 이등중사는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서 1931년 10월 12일에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이 이등중사는 1951년 12월 22일 입대한 후 제주도 모슬포의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등중사가 입대할 당시 제8사단 장병들은 1951년 12월 중순부터 익년 2월까지 진행된 지리산 일대의 공비토벌작전에서 전과를 거두었다.
제8사단 장병들은 공비토벌작전 종료 이후 1952년 3월 다시 미군 제10군단에 배속 전환되어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으로 이동하여 미 해병대 제1사단의 노전평 북방 854고지, 812고지 작전지역을 인수했다. 이후 제8사단은 북한군과 대치한 상황에서 진지 보수에 치중했다. 제8사단 장병들은 1952년 9월 21일 북한군 제45사단의 공격을 받았으며 적군은 일시적으로 854고지를 점령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8사단 장병들은 미 해군, 공군의 화력지원을 받아가며 1952년 9월 21~22일간 북한군 제45사단의 공격을 저지할 수 있었다.
제8사단은 1952년 10월 25일 강원도 김화군으로 이동하여 수도사단으로부터 수도고지 일대의 작전지역을 인계했다. 수도고지는 1952년 9월간 국군수도사단과 중공군 제34사단, 제35사단 간에 수차의 공방이 벌어졌던 해발 600m 능선상의 고지이다. 수도고지는 그 위치나 규모로 보아 다만 전초에 불과했다. 오히려 수도고지는 적 주저항선의 700m 고지들보다 낮아 감제관측을 허용하여, 주간에는 진지공사나 보급추진 등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수도고지는 전략적 요충지로 여겨져 피아간의 주요 결전장이 되어 왔고 이러한 연유로 결코 상실해서는 안 될 고지로 인식되어 주저항선처럼 동굴 진지로 구축되었다.
제21연대는 수도고지 인수 이후 진지 방어와 일대의 수색을 강화했다. 당시 수도고지 전선은 1952년 10월 이후 소강상태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소강상태는 1953년 5월 13일 중공군의 수도고지 공격으로 종료되었다. 특히 중공군은 6월 12일 포병지원과 함께 대대적 공격을 가하며 제21연대를 포위했다. 제21연대는 중공군 일부를 물리쳤으나 주저항선의 전반이 붕괴하여 중공군은 이틀 만에 수도고지를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이 이등중사는 수도고지 진지에서 입은 중상이 악화되어 1953년 6월 16일 사망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금수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64-ㄲ-09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