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금석(李今石)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1109206
  • 전몰일자 : 19520321

공훈사항

이금석 일병은 출생에 관한 정보가 없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1년 4월경 입대 후 제9사단 제2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전입했을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37도선 일대에서 적군과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고, 제9사단은 강원 인제군 하진부리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었다. 1951년 유엔군은 4월에 접어들어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고, 사단은 4월 25일부로 제3군단에 배속되어 강원 인제 동남방의 한석산, 가리봉 일대를 점령했다.
중공군은 5월 16일에 현리 일대의 국군 정면에 전투력을 집중하여 5월 공세를 개시했다. 군단의 유일한 보급로인 오마치고개가 중공군에게 선점된 가운데, 연대는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방태산을 넘어 광원리-속사리로 철수했다.
현리전투의 결과로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9사단은 5월 29일부로 미 제1군단에 배속되어 포천으로 이동해 와이오밍(Wyoming)선(캔자스선 북방 20km 내외의 철의 삼각지대를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6월 5일부터 11일까지 중공군 제165사단과 격전 끝에 보개산과 북대산을 점령했다. 연대는 철의 삼각지 확보에 중요한 감제지형인 김화읍 계웅산 전투에 투입되었고, 치열한 공방전 끝에 6월 28일에 동 고지를 확보했다. 이후 연대는 7월 말까지 적의 수차례에 걸친 공격을 저지, 격퇴했다.
사단은 8월 1일 미 제25사단에 전선을 인계하고 창동에서 교육훈련을 한 후, 10월 5일 다시 미 제1군단에 배속되어 10월 17일 미 제3사단 진지를 인수했다. 사단은 철원 서북방의 요충지인 281고지(화살머리고지)와 395고지(백마고지) 일대에 배치되어 중공군 제126사단과 대치했다. 11월에 접어들어서는 사단 좌전방의 백마고지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었다.
이 일병은 1952년 3월 21일 매복작전 중에 적의 습격을 받자, 분대원을 이끌고 용감하게 앞장서서 싸우다 적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금석 일병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43묘역-3판-1449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9-ㅋ-00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