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금석(李今石)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5304661
  • 전몰일자 : 19510808

공훈사항

이금석 일등중사는 전라남도 무안군 현경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이 일등중사는 1948년 6월 5일에 입대 후 제8사단에 배치되었다. 이 일등중사가 속한 제8사단은 1950년 4월까지 무장공비토벌작전을 진행하고 강릉에 주둔해 있었다. 하지만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하고, 아군은 전쟁 초반 불리한 전세에도 지연전을 펼쳤지만 낙동강 전선까지 철수하였다.
반격 준비를 마친 제8사단은 1950년 9월 국군 총반격 작전에 합류하여 서울, 연천 남방, 철원, 곡산의 잔적을 소탕한 후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아군은 계속 북진하여 11월 9일 덕천 탈환 후 구장으로 진출했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지연전을 펼치며 적의 남하를 저지했다.
이후 제8사단은 1951년 2월 5일부터 국군 제5사단과 함께 홍천군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지만 하지만 홍천군 삼마치 고개 및 오음산 고지를 선점한 중공군 제198사단의 저항에 봉착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공군 2월 공세가 전개되어 국군은 전세는 매우 불리하게 흘러갔다.
제8사단은 전력보충 이후, 1951년 4월 3일 호남지구의 공비토벌작전을 위해 전라북도 전주시로 이동했다. 당시 전라도 일대에 지역 좌익 및 북한군 낙오병이 합세하여 공비가 약 3,000여 명에 달했다. 이에 제8사단은 1951년 4월 16일부터 충남 경찰 소속 제18전투경찰대와 함께 충청남도 금산군 대둔산의 공비토벌에 나섰다. 토벌대는 일대의 고지를 차례로 점령해나가고 인근의 민가를 수색하며 거점을 확보했다. 이후 제8사단은 5월 19일 충청북도 제천군으로 이동하여, 미군 제10군단 제3사단의 예비대로 준비태세를 갖추는 한편 후방을 경계하게 되었다.
제8사단 1951년 7월 말 후방지역 경계 임무를 비롯하여 유격전을 펼치고 수색을 통해 적군의 동향 파악을 지속하고 있었다. 이때 미 제8군사령관 밴플리트 중장은 제한목표공격계획을 수립하는데, 이 계획의 핵심은 적이 점령하고 있는 국군 방어선 남쪽의 해안분지 탈취였다. 이에 제8사단이 주공으로 투입되었고 이 일등중사는 분지를 탈취하는 과정에서 전투 중 총탄에 맞아 1951년 8월 8일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금석 일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2-ㅇ-04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