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금석(李金錫)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4916
  • 전몰일자 : 19501201

공훈사항

이금석 일병은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동에서 출생했다(출생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에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공세를 맞아 힘겹게 저지하고 있던 시기인 1950년 8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제6사단 제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금석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을 때인 9월 중순에 제6사단은 신령 북방에서 북한군의 최후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단은 9월 16일 반격작전을 개시했으나 북한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돌파를 하지 못했다. 이후 제6사단의 계속된 공격에 북한군이 20일 야간부터 철수하기 시작했고, 이에 사단 장병들은 21일부터 추격작전을 실시하여 보은-괴산을 거쳐 30일에 북한군의 경미한 저항을 소탕하며 원주에 진입했다. 이후 10월 5일에 춘천 북방의 모진교에서 38도선을 돌파하여 화천-김화-신고산-덕원(원산 북쪽)-마식령-양덕을 거쳐 19일에 성천-순천을 점령했다.
이금석 일병은 장병들과 함께 10월 22일 아침에 순천을 출발, 강력하게 저항하는 적을 제압하고 희천을 점령했다. 제2연대 장병들은 23일에 희천-벽동 방향으로 진격해 갔다. 이때 중공군은 10월 19일에 압록강을 은밀히 도하하여 적유령 산맥 일대에 은거해 있다가 25일부터 기습적으로 국군의 측후방을 공격하여 차단했다. 사단 장병들은 공중보급을 받으며 27일부터 철수를 감행하여 첩첩산중에서 중공군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으면서 30일에 개천으로 집결했다.
제6사단은 11월 14일에 군단과 함께 개천에서 영원-덕천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2군단의 예비가 되었다. 군단은 11월 24일에 크리스마스 공세작전을 시작했다. 공격 2일차인 25일에 전방에서 공격하던 제7사단이 중공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군단의 예비였던 사단이 투입되었으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단 전 병력은 명에 의거 12월 1일에 북창을 거쳐 시변리-고랑포 지역으로 철수했다. 이날 이금석 일병은 철수하는 도중에 북한군 잔적들의 기습공격을 받고 격퇴했으나, 전투 중에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금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3판-7면-20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2-ㅅ-04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