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금석(李金錫)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5303386
  • 전몰일자 : 19510101

공훈사항

이금석 일등중사는 전라남도 해남군 외면(訂正 완도군 군외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광복 후 대한민국과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기 위해 1948년 5월 중순경 전라남도 광주에 위치한 제5여단 제14연대에 입대했다. 제14연대는 ‘여순10·19사건’으로 11월 20일 해체되어 제20연대로 개칭되고, 1949년 5월 12일부로 제5여단이 제5사단(제3·15·20연대)으로 승격하여 지리산 일대의 공비토벌작전을 수행했다.
6·25전쟁 발발하자 제1사단 장병들과 함께 문산 및 봉일천 전투에서 적의 공격을 지연시켰으나, 역부족으로 6월 28일에 한강을 건너 철수했다. 당시 사단은 전투준비가 미비한 상태에서 전투에 참가하여 큰 피해를 입은 뒤 7월 초 국군 재편성 시에 해체되어 10월 8일에 대구에서 제27·35·36연대를 예하부대로 재창설되었다. 이금석 일등중사는 제2사단에서 복무하다가 사단이 재창설되고 제36연대로 재배치되었다.
제5사단은 재창설 후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북진작전을 한창 진행할 때인 10월 13일부터 영남 일대의 적 패잔병 및 게릴라를 토벌하는 작전에 투입했다. 제36연대는 김천에 전술지휘소를 점령하고 소백산맥이 태백산맥으로 연결되는 지역의 적 패잔병 소탕을 위하여 제1대대를 영동, 제2대대를 거창, 제3대대를 김천 지역에 배치했다.
당시 북한군 패잔병과 좌익 빨치산들은 수시로 산간지역 마을을 습격하여 양민들을 살해하고 보급품을 조달했다. 이에 연대는 경찰과의 긴밀한 협조로 많은 전과를 올렸다. 이러한 국군의 후방지역작전으로 수복지역은 점차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사단이 적 게릴라 소탕작전을 실시하던 시기에 국군과 유엔군은 북진작전으로 압록강 및 두만강을 향해 진격했으나,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사단은 12월 5일경에 전방지역으로 투입되어 17번 국도상의 춘천에 배치하여 철수하는 부대에 대한 엄호작전을 실시했으며, 12월 10일 부로 춘천 동북방 탑두울-배후령 간의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제36연대는 가평 북쪽의 지암리 일대에 배치시켜 중공군의 공세에 대비하고 있었다. 마침내 중공군은 1951년 1월 1일 새벽에 공격(제3차 공세·신정공세)을 개시하여 사단의 후방을 차단하였으며, 좌인접 제2사단 지역을 돌파한 적이 후방으로 진출함으로써 퇴로를 이중으로 차단했다. 이금석 일등중사는 소대원을 진두지휘하며 1월 1일 지암리 일대 방어진지를 사수하려고 교전 중 중공군의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금석 일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1-ㄷ-07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