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금생(李今生)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8832156
  • 전몰일자 : 19530722

공훈사항

이금생 하사는 1931년 7월 26일에 경상북도 선산군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에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포로교환 문제로 휴전협상을 진행하던 시기인 1952년 5월 17일, 제주도 모슬포에 설치한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 후 제11사단 20연대에 배치되었다.
이금생 하사가 부대로 전입 갔을 때인 1952년 6월 중순, 제11사단은 건봉령 일대의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있었고, 그가 소속된 제20연대는 4월 15일부터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이동하여 포로 경비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후 연대는 친공 포로들의 소요사태를 제압하고 안정을 되찾은 후인 7월 11일에 양양에 위치한 사단으로 복귀했었다.
제11사단은 1953년 6월 10일에 방어진지를 제21사단에 인계하고, 화천 일대의 산양리, 하로곡, 동지화로 이동하여 제2군단의 예비가 되었다. 이 지역에서 중공군의 심상찮은 공격징후들이 많이 보였기 때문에 대응하는 조치였다. 실제 중공군은 휴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7월 13일 야간에 중동부전선의 금성돌출부를 탈취하기 위해 대대적인 공격을 했다. 이에 제2군단 예하 부대들은 금성돌출부에서 철수하여 주파령에서 적근산을 연하는 미주리선으로 후퇴했다.
이금생 하사가 소속된 제20연대는 7월 14일에 주파리-적근동으로 진출하여 주저항선을 점령하고 제2군단의 철수를 엄호했다. 그리고 7월 15일에 적근산-삼현지구에 대한 반격작전을 개시하여 18일에 602고지를 탈취하고 금성천 만곡부를 연하는 선까지 진출함으로써 백암산 정면으로 침입한 중공군의 보급로를 완전히 차단했다. 이에 중공군은 7월 20일에 602고지에 대해 대대적인 역습을 했다. 이에 제20연대는 치열한 전투 끝에 602고지를 빼앗겼으나, 다시 7월 21일부터 602고지를 다시 빼앗기 위해 공격했다. 그는 7월 22일 공격전투에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금생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7판-1면-20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4-ㄲ-05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