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금복(李金福)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8175
  • 전몰일자 : 19511230

공훈사항

이금복 일병은 전라북도 옥계군 개정면에서 출생했다(출생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현재의 휴전선 부근까지 진격하여 휴전협상이 논의되던 1951년 6월 말, 제주도 모슬포에 위치한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6사단 제19연대에 배치되었다.
이금복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을 때인 7월 말, 제6사단은 철의 삼각지대 우측인 등대리-단거리-수리봉을 연하는 방어선을 점령하고 있었다. 당시 쌍방 간에 휴전 협상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공세적인 활동은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공산군이 휴전 협상을 지연시키면서 군사력 증강을 꾀하자, 이에 유엔사에서는 휴전 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공세적인 활동으로 방어지역 전방에 유리한 지역을 추가로 확보하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제6사단은 전방의 감제고지인 819고지를 탈취하기로 계획했다. 먼저 제2연대가 9월 21일에 819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수차례에 걸쳐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이어 이금복 일병이 소속된 제19연대가 9월 24일에 공격을 개시하여 치열한 전투로 적을 제압하고 9월 28일까지 819고지를 탈취했다. 그리고 사단은 방어진지 전방의 금성천 분지를 확보하기 위해 10월 13일부터 공격을 개시하여 금성천을 건너 중공군을 격파하고, 10월 21일에는 교암산-송동리 선까지 점령했다.
이후 제19연대 장병들은 송동리 일대에서 동측으로 이동하여 등대리 일대의 방어진지를 점령하여 방어진지 보강과 작전지역에 대한 수색작전을 강화했다. 이금복 일병은 소대원들과 함께 12월 30일에 방어진지 전방으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조를 발견하여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가함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금복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5-ㅈ-00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