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금복(李金福)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9779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금복 일병은 전라북도 옥구군 개정면에서 출생했다(출생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1948년에 수립되었으나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매우 혼란스러웠던 1948년 8월, 서울 용산에 위치한 제2훈련학교로 입대하여 포병훈련을 받았으나, 동년 11월 6일에 제2훈련학교가 폐교됨에 따라 시흥에 위치한 보병학교 교도대로 배치되었다(당시 육군 제2훈련소는 별도로 운영되지 않았음).
육군본부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보병학교와 육군사관학교 교도대로 서울특별연대를 편성하여 제1사단에 배속하도록 명령했고, 보병학교 학생연대장 유해준 중령은 용산초등학교에서 혼성연대를 편성했다. 서울특별연대는 6월 25일 저녁 무렵 문산에 있는 제1사단에 도착했다. 사단은 육사교도대를 우전방 제13연대에 배속하고, 보병학교 교도대를 좌전방 제11연대에 배속했다.
이금복 일병이 소속된 보병학교 교도대는 제11연대장 최경록 대령의 명령에 따라 교도대장 김병화 소령이 제1, 2중대를 직접 지휘하여 문산으로 이동하고, 제3중대와 중화기중대는 교도대 부대장 지휘하에 문산포 서측방의 굴촌리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문산 돌출부의 제1대대 진지가 무너지자 연대장은 임진강을 연한 전 방어선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으로 판단하고 역습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제3대대가 역습을 위해 6월 26일 오후 1시경 64고지와 운천리 간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으나, 좌측방에 적이 출현함으로써 진출이 막히게 되었다.
연대장은 이금복 일병이 소속된 교도대에게 제3대대 좌측방에서 역습을 할 것을 명령했다. 이에 문산 북쪽에 위치한 교도대가 역습을 개시하여 비 오듯 쏟아지는 적의 포탄 속에서도 적의 공격을 격퇴하여 좌측방의 위협을 제거하고, 임진강 강변 반압리까지 진출함으로써 연대가 전선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는 6월 26일 문산전투에서 용감하게 돌격을 감행하다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보병학교 교도대가 실제 전투에 투입된 6월 26일 전사한 것으로 추정)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금복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5판-8면-25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9-ㅅ-061)에 이름을 새겨, 후세들이 그를 추모·기억하면서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본받도록 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