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금배(李今培)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1231

공훈사항

이금배 경사는 1911년 12월 21일 전남 나주시 제지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1946년 8월 14일 경찰에 입문했으며, 전몰 당시 전남도경 광산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광주시 송정동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기습남침을 감행하자 치안국은 전시 비상경비총사령부 체제로 전환하고, 각도 경찰국에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할 것과 각 지서별로 전투경찰대대를 편성하여 대처하도록 지시한 후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고 군경부대가 남쪽으로 후퇴함에 따라 광산경찰은 장성-광산, 광산-함평, 광산-나주, 광산-광주를 잇는 주요 도로 통제, 주요 시설 경비,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북한군 제6사단이 호남지역에 투입되어 7월 16일 금강을 도하하여 이리-전주로 남진하자 육군본부는 7월 17일 서해안지구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전북·전남 편성관구사령부와 신편 제7사단·제5사단, 경찰 등을 배속하여 지역방어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북한군은 7월 18일 강경을, 7월 20일 익산을 점령했고, 그중 일부 부대는 김제로, 일부는 전주로 남하함에 따라 전북도경은 이날 남원으로 철수했다. 7월 20일 전주도 적의 수중에 들어가자 남원에 집결한 전북도경과 전북 북부지역 경찰은 임실 방면에서 남하하는 북한군에 대비하기 위해 육군부대와 합동 방어태세를 갖추고, 운봉에 진출한 함양경찰 병력과 합세하여 육십령 고개에 차단진지를 구축했다.
북한군의 남진에 따라 7월 20일 전남도경이 보성으로 철수하자 광산경찰도 보성 일대로 철수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국군과 유엔군이 9월 16일 총반격작전을 개시하자 각도 경찰국은 관할지역 경찰관서를 수복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했고, 10월 1일 광산경찰서를 수복한 광산경찰은 잔적 소탕과 치안 유지에 들어갔다.
인천상륙작전과 국군·유엔군의 총반격 작전으로 퇴로가 차단된 북한군은 가까운 산지로 들어가 공비들과 합류하여 게릴라 활동을 전개했다. 이에 광산경찰이 공비소탕작전을 전개하던 중 12월 31일에는 송정동에서 교전이 벌어졌다. 이 경사는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적을 격멸하다가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금배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9-ㄲ-05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