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금동(李金東)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400711
  • 전몰일자 : 19521105

공훈사항

이금동 일병은 1918년 4월 15일에 전라북도 정읍군(現 정읍시) 정주면(訂正 정우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 협상이 진행되면서 고지 쟁탈전이 지속되던 1951년 12월 중순경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육군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전황이 워낙 급박하여 열흘 간 소총사격술 만 훈련하고 바로 전선에 투입되었다.
이금동 일병이 전선에 배치될 당시 1951년 말 전선의 양상은 장기 교착상태에서 때때로 공격행동을 취할 때는 다만 전초진지 주위의 주요고지를 목표로 쟁탈전이 전개되곤 했다. 대부분 전선에서는 연대급 이하의 전초진지 쟁탈이 반복된 소부대전투의 연속이었으며 거의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1952년 9월에 접어들면서부터 적은 전 전선에서 작전의 주도권을 잡고 아군 전초진지에 대해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이 후 북한군의 역습이 시작됨에 따라 이들 중 중요 전초에서의 쟁탈전은 계속되었고, 이어 전 전선에 걸친 전초진지 쟁탈전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전투는 대체로 피아간에 주진지의 변동이 없는 가운데 보다 유리한 전초진지를 장악하여 각기 방어태세를 강화하려는데 주안이 있었다.
그 후 10월에 접어들면서 판문점의 휴전회담이 포로문제를 중심으로 결렬상태에 돌입하자, 유엔군은 북한군 후방의 전력시설인 수풍발전소와 부전. 장진 등의 발전소에 대하여 대규모의 전략폭격을 가하게 되었다. 이금동 일병이 전투를 수행하는 고지에서 서로 뺏고 빼앗기는 전투가 반복되면서 북한군과 아군의 시체가 쌓여갔으며,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위기에 처한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전투에 임했다. 최후까지 용감하게 중공군을 방어하던 이금동 일병은 1952년 11월 5일 전라북도 정읍 일대에서 후방지역작전을 수행하다가 북한군 게릴라(패잔병)와 조우하여 교전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금동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장병2묘역-133판-18488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8-ㄴ-01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