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금돌(李今乭)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242690
  • 전몰일자 : 19510515

공훈사항

이금돌 이병은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조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구하고자 분연히 일어섰다. 이 이병은 1951년 1월경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1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37도선 일대에서 공산군과 공방전을 전개하고 있었고, 제3사단은 횡성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1951년 2월 11일 중공군은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감행했다. 이때 연대는 미 제187연대전투단에 배속되어 횡성의 섬강 일대에서 중공군 제197사단과 혈전을 벌였다. 연대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전세가 불리해짐에 따라 상급부대 명령에 의거 12일 원주로 철수했다. 2월 21일 유엔군의 킬러작전이 개시되었고, 사단은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횡성군 강림-안흥-봉화산으로 진격하여 봉화산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하여 3월 7일부터 31일까지 리퍼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연대는 하진부리 일대에서 진격하여, 적의 완강한 저항을 물리치고 3월 28일까지 38도선 상의 현리-하서림을 연하는 선을 확보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고, 연대는 4월 중순 한계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4월 22일 시작된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 때 연대는 강원 인제의 한석산, 매봉 일대에서 북한군 제6사단과 치열한 격전 끝에 결국 주 방어선인 한석산, 가리봉 일대를 지켜냈다. 이 전투에서 이 이병은 신병이었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앞장서서 분전하다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5월 15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금돌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7-ㄲ-00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