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금도(李今道)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14057
  • 전몰일자 : 19510101

공훈사항

이금도 일병은 경상남도 김해군에서 출생했다(출생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한 1950년 9월 중순,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하고 제6사단 수색대에 배치되었다.
이금도 일병이 부대에 도착했을 때인 10월 24일, 제6사단은 유엔군의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에 참가하여 선두부대가 10월 26일에 압록강 변의 초산을 점령했다. 이금도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반격 및 북진작전 간에 사단의 기동에 앞서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적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여 전투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중공군은 10월 19일에 은밀히 압록강을 건너 적유령 산맥 일대에 숨어 있다가 26일에 압록강을 향해 진격하는 아군의 후방을 차단하면서 대대적인 공격을 실시했다. 사단 장병들은 27일부터 후방이 차단된 상황에서 철수해야 했다. 그가 소속된 수색소대는 적정을 수집하여 사단에 보고하면서 130km의 험준한 산길을 따라 탈출하여 31일에 개천에 집결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개입 규모도 모른 채 전쟁을 조기에 종결하기 위해 11월 24일을 기해 2차 총공세를 실시했다. 그러나 중공군은 은밀히 은거해 있다가 25일에 대반격으로 국군의 후방을 차단했다. 이에 국군과 유엔군은 진격을 멈추고 처음에는 평양방어선으로 후퇴하다가 결국은 38도선으로 철수하게 된다. 사단은 12월 11일에 전곡 일대에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차후 있을 중공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진지구축 등 방어준비태세를 강화했다.
이금도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원들은 곧 예상되는 중공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적진으로 침투했다. 이때 중공군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서울을 목표로 총공세를 펼쳤다. 제6사단은 전곡 일대 방어진지에서 적의 공격을 1차적으로 격퇴했으나, 인접부대가 돌파되어 측후방이 위험하여 다음 날 아침에 사단의 화력엄호하에 철수를 감행했다. 수색중대는 최후까지 적진에 남아 적 후방을 교란하여 적의 진출을 지연시키고 마지막으로 철수했다. 그는 철수 간에 적의 습격을 받고 돌파를 시도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금도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4판-8면-21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2-ㄷ-09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