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금도(이금도)

  • 군별 : 육군
  • 계급 : 소위
  • 군번 : 127043
  • 전몰일자 : 19530719

공훈사항


이금도 소위는 1930년 6월 9일 출생했다(출생지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분연히 일어섰다. 이 소위는 1951년 2월경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동 훈련소 조교로 배치되었다. 이 소위는 신병교육에 전념하다 제12사단이 창설될 때 동 사단 제52연대로 전속되었다.
한편, 1951년 7월 10일 최초로 휴전회담이 열리면서 회담이 진행되자, 한·미는 미군 재보충이 어려운 상황과 휴전 후의 한국 국방을 고려하여 1952년 초부터 육군을 10개 사단에서 20개 사단으로 증편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제12사단은 11월 8일 강원도 양양에서 신편된 제53·55·56교육보충연대를 잠정 배속하여 창설되었다가, 12월 10일부로 이들 연대를 배속 해제하고, 중장비 연대로 개편 완료된 제37·51·52연대를 건제부대로 편성했다.
사단은 12월 18일 인제로 이동하여 교육훈련을 끝내고, 12월 27일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30일 미 제45사단과 임무 교대하여 서화계곡을 감제하는 812-854고지를 잇는 전선을 인수했다. 제52연대는 사단 예비로서 진지교대 이후 큰 전투가 없는 가운데 현 진지를 보강하면서 위력수색, 매복작전 등을 지속했다.
기간 중 이 소위는 장교가 되고자 전남 광주에 위치한 육군보병학교에 입교하여 소정의 교육훈련을 받고, 1953년 6월 20일 갑종 간부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제52연대에 원복했다. 그가 장교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동안, 공산군은 휴전회담을 지원하면서 새로 투입된 중공군의 전투경험 축적과 아울러 방어선을 개선할 목적으로 6월 공세를 감행했다. 이 공세의 일환으로 사단 정면의 북한군 제3군단 예하 제45사단이 1953년 6월 1일부터 공격을 가해왔다. 사단 좌전방의 제37연대가 812고지를 탈취당하자, 연대는 역습을 감행하여 6월 9일까지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했지만 결국 812고지를 탈환하지 못하고 한 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7월 16일 적은 재차 공격을 가해왔고, 연대 장병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전개하면서 분전했으나, 결국 812고지 동측의 쌍룡고지를 빼앗긴 채 휴전을 맞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이 소위는 부대에 배치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소대원을 이끌고 용감하게 앞장서서 싸우며 끝까지 진지를 사수하다 적탄에 맞아 7월 19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금도 소위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97255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위패(47판-5면-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122-ㅂ-00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